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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둥이/넓고 얕은 지식

대놓고 독립운동가 - 무타구치 렌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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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 진정으로 애쓰신 우리나분도 많지만요

저번 포스팅이 매우매우매우 무거웠는지라.

오늘은 즐겁게 보고 웃으실 수 있는 인물을 준비해 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

 

 

일본군의 장군으로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한 끝에

적에게는 찬사를 아군에게는 멸시와 질타를 받은(?) 전설적인 인물을 소개할까 해요

오타 아닙니다.                                         

 

바로 무타구치 렌야입니다.

 

오직 두눈엔 대한 독립을 위한 열의 뿐!

 

전설적인 팀킬의 대가이자

일본의 극우세력도 미화를 포기한 몇 안되는 인물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분들이

진심어린 존경을 담아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부르고 있죠.

 

 

그의 전설은 중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루거우차오 사건부터 시작됩니다.

루거우차오. 노구교로 더 알려진 다리입니다. 마르코폴로가 언급한 덕분에 서양에서는 마르코폴로 다리로 더 알려져 있다네요.

 

우리의 무타구치 렌야 선생은 이 근처에서 연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부하가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집합에 늦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이를 '중국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즉각 전투명령을 내립니다.

 

부하들은 이 믿을 수 없는 명령에 '정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지만

그는 단호했죠. 오오

 

월권입니다. 월권이에요.ㅋㅋㅋㅋ

연대장은 이럴 권한이 없단 말입니닼ㅋㅋㅋㅋ

 

이 사건은 결국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웃긴 점은

똥누다 늦은 병사때문에 국가간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 외에도

 

우리 무다구치상이 전투에 한 번도 참여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 앞에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 어필했다는 거구요.ㅋㅋㅋㅋㅋ

이걸 이어진 작전회의에서도 차고 있었답니다.ㅋㅋㅋ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임팔 작전 이었습니다.

임팔 작전은 버마에서 아라칸 산맥을 넘어 인도 북부의 아삼을 기습한다는 계획이었어요.

이 때 그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물자만 휴대하라고 지시하고는

15일짜리 작전이라고 선언했는데요,

실제 작전 기간은 석달이 넘어갔어요

 

 

이 때 렌야 선생은 뛰어난 용병술과 재담으로

자신의 병력을 8할 넘게 녹여냈는데요.

 

그 분의 명언을 한 번 보시죠.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는 법이다."

 

캬~ 절로 감탄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20세기에 이런 명 작전을 정식으로 입안한 나라는

인외마경인 북한 뿐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전시지침으로 물자 현지 징발을 명시한 나라는 북한 뿐입니다.ㅋㅋㅋㅋ

 

적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물자를 얌전히 넘겨줄 리도 없구요.

게다가 장비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적의 물건이라고 막 쓸 수 있고 그런것도 아닌데 말이죸ㅋㅋㅋ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이런 소를 기대하셨나 봅니다.ㅋㅋ

 

심지어 여기에 징기스칸 작전 이라는 이름도 붙이셨답니닼ㅋㅋㅋ

 

문제는 이 동물들이 다 현지 징발이라서

제대로 먹을것도 안주는 데다

잘 걷지도 못하는 애들을 걔속 걷게 하다 보니

도망치고, 죽고...

아아... 결국 저기 싣고 가던 물자는 반토막.

 

거기다 먹힌 가축보다 도망가거나 도중에 절벽에서 추락사 하는 가축이 더 많았데요.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

 

 

정말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죠...

정작 상대편인 영국군은 일본군이 진지를 포위하자 비행기를 이용해 물자를 보급하며 버텼는데 말이죠.

 

심지어 가끔 일부가 일본군 쪽으로 떨어지면

일본군들은 이것을 '처칠 급여'라고 부르며 생명줄로 여겼답니다.ㅋㅋㅋㅋ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그의 어록 중 정점을 찍는 희대의 명언입니다.

 

예하부대에서 식량 보급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한 대답이라고 하는데요.

 

결국 일본군은 풀뿌리와 애벌래를 먹었을뿐 아니라

버티다 죽은 아군의 시체까지 먹었다네요.

 

 

도쿄에서 열린 전범재판 당시의 모습입니다.

 

결국 2차 대전 후 열린 전범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지만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공이 인정돼서

도쿄에서 불기소 되구요

싱가폴에서 2년형을 선고 받아 살고 나왔데요.

다른 A급 전범들이 대부분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말이지요.

 

심지어 이 기간동안 대우를 잘 해줘서

살이 더 쪄서 나왔다는 후문입니다.ㅋㅋㅋㅋㅋ

 

 

1948년 일본에 돌아온 렌야 선생은 남은 평생을

'작전은 옳았지만 실패한 것은 모두 부하의 잘못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하며 살았는데요

 

임팔 전투의 일본군 전몰자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낼 때 그 자리에 나타나서

<임팔 전선의 패배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부하들이 잘못 싸운 것>

이라는 유인물을 나눠주려다가 물세례를 받았고요,

 

부대 전우회에 직접 가서 주체못할 개그본성으로 또 위의 유인물을 돌리다가

회원들에게 멍석말이와 몽둥이 찜질을 겪었답니다.

 

심지어는 죽기 전 마지막 남긴 말도

"내 잘못이 아냐, 부하 잘못이지!(私は悪くない、部下が悪い!)"였고,

자기 장례식에서조차 유족들에게 또 그 유인물을 돌리라 했답니다.

 

 

 

이렇게 격하게 대한의 독립을 위해 살다가신

무타구치 렌야 선생을 위해

한 번 쯤 그의 자료를 찾아보는건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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